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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정말 흐르고 있을까

by 이천연 2026. 8. 21.

과거·현재·미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이 오고,

점심이 지나고,

밤이 찾아온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은 지금이며,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세 가지를 구분한다.

과거. 현재. 미래.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이고,

현재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며,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잠시 멈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현재란 정확히 무엇일까?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지금"

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는

얼마나 긴 시간일까?

1초일까?

0.1초일까?

아니면

수학적으로는

길이가 전혀 없는

하나의 순간일까?

더 이상한 질문도 가능하다.

시간은 정말 흐르는 것일까?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실제로

강물처럼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고,

숫자가 변하고,

우리의 몸이 늙고,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본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 자체가 흐른다"

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상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계는 시간을 측정할 뿐이다

시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시계를 떠올리게 된다.

초침이 움직인다.

분침이 움직인다.

숫자가 바뀐다.

그래서 우리는

시계를 보면서

"시간이 흘렀다"

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시계가 측정하는 것은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변화다.

시계 안에서

어떤 물리적 과정이 반복되고

그 반복을 기준으로

우리는 시간을 측정한다.

과거에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시간을 나눴다.

그다음에는

진자시계가 등장했다.

오늘날에는

원자의 특정한 전이와 진동을 이용하는

원자시계가

매우 정밀한 시간의 기준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시계의 종류가 바뀌어도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는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으면 변화도 없을까

여기서

시간과 변화의 관계가 등장한다.

공이 움직인다.

꽃이 핀다.

사람이 성장한다.

별이 변한다.

우리가 생각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리고 우리는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시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간과 변화 중

어느 것이 먼저일까?

시간이 있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변화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일까?

아직도 철학과 물리학에서는

이 질문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뉴턴의 시간

고전물리학에서

시간은 비교적 단순했다.

뉴턴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우주 전체를 관통하며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보편적인 배경처럼 취급됐다.

누가 어디에 있든,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든,

시간 자체는 동일하게 흐른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우주라는 거대한 무대가 있고,

그 무대 위에서

물체가 움직이며,

시간은 모든 곳에서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이 관점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

굉장히 잘 맞는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등장했다

20세기 초,

물리학은

시간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의 측정값이 달라질 수 있다.

처음 들으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의 직관을 따라 움직일 의무가 없다.


움직이는 시계는 느리게 간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두 관찰자는

시간의 흐름을

서로 다르게 측정할 수 있다.

특히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수록

그 차이는 커진다.

이 현상을

시간 지연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시계가

고장 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관찰자가 각각 자신의 시계를

정상적으로 측정하더라도

다시 만나서 비교하면

두 사람이 경험한 시간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쌍둥이 사고실험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유명한 사고실험이 있다.

두 쌍둥이가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은 지구에 남고,

다른 사람은

아주 빠른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우주선이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인 뒤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그런데

두 사람의 나이가

완전히 같지 않을 수 있다.

여행을 떠난 쌍둥이가

지구에 남은 쌍둥이보다

더 적은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을 흔히

쌍둥이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역설이 아니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이 생긴다.

"서로 상대방이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서로의 시간이 느려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마지막에 누가 더 젊어야 하는가?

핵심은 두 사람의 상황이

완전히 대칭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우주여행을 한 쪽은

여행 과정에서

방향을 바꾸고,

가속하고,

감속하는 등의

운동 상태 변화를 겪는다.

결국 두 사람이 경험한

시공간의 경로가 달라진다.

그래서 다시 만났을 때

실제로 경과한 시간이

다르게 측정될 수 있다.


시간은 모두에게 같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간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완전히 흔든다.

우리는 시간을

우주 전체에 깔려 있는

하나의 거대한 시계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에서는

그런 절대적인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 관찰자는

자신의 운동 상태와

중력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간 간격을 측정할 수 있다.


중력도 시간에 영향을 준다

특수상대성이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중력과 시간의 관계도 등장한다.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것으로

측정된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 다른 중력 퍼텐셜에 놓인

시계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간다.

이것을

중력 시간 지연이라고 한다.


지구에서도 시간은 다르다

이것은

블랙홀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구에서도

측정할 수 있다.

지표면에 가까운 시계와

더 높은 고도에 있는 시계는

중력 환경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을 서로 다르게 측정한다.

그 차이는 매우 작지만

현대의 정밀한 시계로는

측정할 수 있다.


GPS가 다시 등장한다

GPS 위성은

지구 표면보다 높은 곳에 있다.

또한 지구를 빠르게 움직인다.

따라서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른 효과와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른 효과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를 보정하지 않으면

위치 계산에 오차가 발생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에서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데에는

이런 상대론적 효과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기술도

들어 있다.


시간은 공간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여기서

24편의 핵심 개념이 등장한다.

시공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는

공간과 시간이

서로 완전히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연결된다.

어떤 사건을 설명하려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뿐만 아니라

언제 일어났는지도 필요하다.

그래서 사건 하나를

시공간 안의

하나의 지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사건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서울의 한 장소에서

오후 3시에

번개가 쳤다고 하자.

"어디에서?"

라는 질문에는

공간 좌표가 필요하다.

"언제?"

라는 질문에는

시간 좌표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사건을 정확하게 지정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시공간 속에서 다룬다.


그렇다면 현재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시간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등장한다.

우리는

현재가 있다고 느낀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읽고 있다.

이것은

현재의 사건이다.

그런데

현재라는 것은

우주 전체에서

하나의 동일한 순간일까?

상대성이론의 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동시성은 절대적이지 않다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는 판단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상대성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서

같은 시각에 발생한 사건은

누구에게나 동시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론적 세계에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빛의 속도가 모든 것을 바꾼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빛의 속도를 생각해야 한다.

빛은

진공에서 항상

약 초속 30만 km의 속도로 이동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관찰자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와 관계없이

빛의 속도가 동일하게 측정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우리의 고전적인 시간 개념과

충돌한다.

그래서

공간과 시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해야 했다.


기차와 번개

유명한 사고실험을 생각해 보자.

기차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차의 가운데에

한 사람이 서 있다.

기차가 지나가는 선로 옆에는

또 다른 관찰자가 서 있다.

기차의 앞쪽과 뒤쪽에

번개가 동시에 친다고 하자.

선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두 번개가 동시에 발생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움직이는 기차 안의 관찰자는

두 번개가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누가 틀린 것일까?

둘 다

자신의 기준계에서는

정확하게 측정한 것이다.


현재는 우주 전체에 공통된 것일까

이 질문은

매우 깊은 철학적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부르는 순간이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통된 시간이라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정의될까?

상대성이론에서는

모든 관찰자가 공유하는

절대적인 우주의 현재를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다.

즉,

**우주 전체에 하나의 절대적인 '지금'이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것은 우리의 직관을 흔든다

우리는

현재가 너무나 명확하다고 느낀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리학은

그 "지금"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서

더 깊은 문제가 생긴다.


과거는 사라진 것일까

어제의 사건은

끝났다.

어제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할 수 있지만

직접 다시 경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가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리학적으로

"사라졌다"는 표현은

조금 더 복잡한 의미를 갖는다.


블록 우주라는 생각

상대성이론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철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관점이 등장한다.

이를 흔히

블록 우주(Block Universe)라고 부른다.

이 관점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건들의 영역으로 바라본다.

우주 전체의 시공간을

거대한 4차원 구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화 필름과 비슷하다

영화 필름을 생각해 보자.

한 편의 영화에는

수많은 장면이 들어 있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보내는 장면,

성인이 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까지

모두 필름 안에 존재한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는

한 장면씩 경험한다.

그래서

장면이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블록 우주라는 관점은

이와 비슷한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전체 시공간이

하나의 구조로 존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특정한 순서로 사건을 경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는 정말 영화 필름일까

여기서 주의해야 한다.

블록 우주는

상대성이론 그 자체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상대성이론의 수학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해석할 것인지에 관한

하나의 관점이다.

물리학자와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시간의 본질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현재주의

반대쪽에는

현재주의라는 철학적 관점이 있다.

현재주의에서는

오직 현재만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본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당히 잘 맞는다.


영원주의

반면

영원주의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어떤 의미에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것은

그 거대한 시공간 구조의

특정한 위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미래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 자체가

절대적인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의 화살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는다.

만약

물리학의 기본 법칙 상당수가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성립할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시간을 한 방향으로만 경험할까?

왜 우리는

깨진 컵이 저절로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할까?

왜 연기는

방 안으로 퍼져나가지만

저절로 한 점으로 모이지 않을까?

왜 우리의 기억은

과거를 향하고

미래를 향하지 않을까?


시간의 화살

우리는 시간을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으로

느낀다.

이것을 흔히

시간의 화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시간의 화살이

시간 자체의 기본적인 성질인지,

아니면 우주의 물리적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인지는

매우 깊은 문제다.


엔트로피

이 문제에서

등장하는 핵심 개념이

엔트로피다.

쉽게 말하면

엔트로피는

어떤 물리적 시스템의

가능한 미시적 상태와 관련된

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는

고립된 계의 엔트로피가

감소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방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얼음은 녹지만 물은 저절로 얼음이 되지 않는다

차가운 방에

얼음 한 조각을 놓아두자.

시간이 지나면

얼음은 녹는다.

하지만 특별한 조건이 없다면

녹은 물이

저절로 얼음 조각으로 돌아가면서

주변의 열을 모두 가져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리 법칙이

그런 과정을 절대적으로 금지한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과정이

압도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


깨진 컵

탁자에서 컵이 떨어져

바닥에 깨진다.

수많은 조각이 생긴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하지만

깨진 조각들이

저절로 다시 모여

컵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보지 못한다.

왜 그럴까?

컵이 깨지는 과정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미시적 상태가

가능해진다.

반대로

완벽한 컵 하나로 모인 상태는

훨씬 특별한 상태다.


엔트로피와 시간의 방향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방향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로 갈수록

더 많은 변화와

더 복잡한 물리적 흔적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기억은 왜 과거에만 있을까

여기에는

흥미로운 연결이 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한다.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내일 오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기억할 수 없다.

왜일까?

우리의 뇌가

시간의 화살을

따라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현재의 뇌 상태에

과거 사건의 물리적 흔적이

남아 있는 과정이다.

미래의 사건이

아직 우리 뇌에

그와 같은 방식으로

흔적을 남길 수는 없다.


우리는 과거의 흔적 속에서 살아간다

발자국,

사진,

화석,

기록,

기억.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남긴 흔적이다.

우리는 이런 흔적을 통해

과거를 알아낸다.

하지만 미래에는

아직 그런 흔적이 없다.

그래서

시간의 방향은

우리의 경험과

정보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이 있다

물리학의 많은 기본 방정식은

시간을 뒤집어도

형식적으로 성립하는 경우가 있다.

공을 굴리는 영상을

거꾸로 재생해도

물리 법칙만 놓고 보면

그 움직임을 완전히 금지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왜 현실은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처럼 보일까?


우주의 시작과 낮은 엔트로피

이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우주의 초기 상태라는

아주 깊은 문제와 만난다.

우주가 매우 특별한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서

시작했다면,

그 이후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방향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즉,

시간의 화살이

시간이라는 것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시간은 환상일까

여기까지 오면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시간은

물리학의 방정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계는 실제로

서로 다른 시간 간격을 측정한다.

상대론적 시간 지연도

실험적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시간은 완전히 허구다"

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이

물리학의 근본적인 시간과

정확히 같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시간은 존재하지만 흐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처음 들으면

모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존재한다"

"시간이 흐른다"

는 서로 다른 주장이다.

공간이 존재한다고 해서

공간 자체가

어딘가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시공간에 시간 좌표가 존재한다고 해서

시간 자체가

강물처럼 흘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흐름은

변화,

기억,

엔트로피,

의식과

연결된 현상일 수도 있다.


현재라는 것은 뇌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는

사실 아주 복잡한 과정의 결과일 수 있다.

빛과 소리가

우리 감각기관에 도달하고,

신경계가 정보를 처리하고,

뇌가 서로 다른 정보를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한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라고 느끼는 것은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하나의 물리적 경계선이라기보다

우리의 인식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경험일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간을 직접 경험하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시간을

직접 만지거나 볼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변화다.

시계의 숫자가 바뀌고,

몸이 변하고,

주변 환경이 변하고,

기억이 쌓인다.

우리는

그 변화의 연속을

시간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없다면 변화도 없다

반대로

모든 변화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보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모든 입자의 상태가

영원히 똑같다.

그런 세계에서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관측 가능한 변화가 없다면

시간의 경과를

측정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시간은 관계일지도 모른다

어떤 철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물질처럼 보기보다

사건과 변화 사이의 관계

이해하려고 했다.

A라는 사건이 있고

B라는 사건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A가 B보다 먼저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런 관계를 통해

시간의 구조를

정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시간의 본질은

현대 물리학에서

아직 완전히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양자역학과 중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려는 과정에서는

시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조차

매우 복잡해진다.

일부 양자중력 접근에서는

시간이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근본적인 변수로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논의된다.


시간이 더 근본적인 것에서 나올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더 근본적인 물리적 구조에서

나타나는

창발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온도도 비슷한 예다.

하나의 원자에는

"온도"라는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많은 입자가 모이면

온도라는 거시적 성질이 나타난다.

시간도

어떤 더 근본적인 구조가 모였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일 가능성이

이론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일상적으로는

당연히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물리학적으로는

조금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시공간 속에서

하나의 경로를 따라간다.

그리고 우리의 고유시간은

그 경로를 따라 측정된다.

우리가 느끼는

"미래로 간다"는 경험은

그 경로와

우리의 의식,

기억,

물리적 변화가 결합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 나온다.

시간여행은 가능할까?

사실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상대성이론의 의미에서

이미 가능하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보다

더 적은 고유시간을 경험하고

미래의 시점에 도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다.

빠르게 움직이거나

강한 중력 환경에 놓이면

그 효과가 나타난다.


우리는 이미 미래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일상적인 속도에서는

그 차이가 극도로 작다.

우주비행사처럼

지구와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과

지상에 있는 사람 사이에도

미세한 시간 차이가 발생한다.

즉,

상대성이론적인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 조금씩 다른 속도로

미래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은

훨씬 복잡하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일부

수학적 해에서는

닫힌 시간꼴 곡선 같은

특이한 구조가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우주에서

물리적으로 실현 가능한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리고 인과관계의 역설,

안정성 문제 등

수많은 어려움이 있다.


할아버지 역설

가장 유명한 것이

이른바

할아버지 역설이다.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조상을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자신은 태어날 수 없다.

그런데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과거로 돌아가

그 일을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것은 시간여행이

단순히 기계 하나를 만드는 문제를 넘어

인과관계 자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간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상하다

우리는 시간을

매일 사용하면서도

그 본질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리학을 조금 깊게 들어가면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으며,

중력과 운동에 영향을 받고,

공간과 결합되어 있으며,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방향은

엔트로피와 깊은 관련을 가진다.

그리고

현재라는 개념조차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는 시간 속에 있는가

어쩌면

이 질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공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공간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특정한 경로를 따라

사건을 경험하는 것일까?

현재 과학은

이 질문에 대해

완전히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여기서 차원의 문제가 다시 돌아온다

23편에서 우리는

차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3개의 공간 차원과

1개의 시간 차원을 가진

시공간.

그런데 만약

시간도 하나의 차원이라면

우리의 경험은

시공간 전체의 일부만을

따라가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경험하며

미래를 예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미래의 사건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더 놀라운 질문

만약

우리의 우주가

3개의 공간 차원과

1개의 시간 차원만 가진 것이 아니라면?

만약

그 뒤에 우리가 볼 수 없는

추가적인 공간 차원이 존재한다면?

그 차원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왜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까?

그리고

그 차원을 통해

우리의 우주와

다른 우주가 연결될 수도 있을까?